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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정치

‘대통합의 밀알’ 다시 한 번 더?

by 아나코스 2015. 3. 26.

통합민주당 전당대회 앞두고 ‘김근태 역할론’ 또 거론

당 진로 결정에 ‘구심점’ 기대도  
 
 [970호] 2008년 05월 19일 (월)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대통합을 이루는 작은 밀알이 되겠다.” 지난해 6월 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권 포기를 선언했다. 지지부진하던 민주·개혁 진영의 통합 논의에 물꼬를 트기 위해서였다. 앞서 있었던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는 격이 달랐다. 김 전 의장은 당시 40명이 넘는 현역 의원이 참여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연)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등 여권 내에서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경쟁 대선 주자들의 여론 지지율이 1~3%대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던 때라 김 전 의장의 대선 후보 가능성도 열려 있던 상황이었다.

 

불출마 선언의 배경을 놓고 갖가지 정치적 해석이 나왔지만, 어찌 되었든 기득권을 내버린 김 전 의장의 ‘자기 희생’은 사분오열하던 민주·개혁 진영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는 단초가 되었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던 ‘장외주’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범여권행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유력 대선 주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연석회의도 성사시켰다.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통합이 성공하면 1등 수훈은 김근태 전 의장이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김근태 정신’을 치켜세우는 등 주변의 찬사는 줄을 이었다.

 

ⓒ연합뉴스

 

‘밀알’은 ‘싹’을 틔웠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출범했고, 국민경선을 통해 정동영 후보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그 ‘싹’이 온전히 자라지는 못했다. 또 다른 ‘장외주’였던 문국현 후보를 끌어들이지 못했고, 독자 노선을 선택한 민주당과의 합당에 실패했다. 그런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은 참패로 막을 내렸고, 넉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도 예상대로 반 토막 성적에 머물렀다. 김 전 의장 자신도 신예 정치인에게 밀려 낙선하는 비운을 맛보았다. 불출마를 선언한 지 1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김근태 역할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어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이번에는 통합민주당을 제대로 된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김 전 의장이 일정한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당장 오는 7월6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제1 야당을 이끌 실질적인 지도부를 선출하는 자리인 만큼 ‘민주호’는 물론 ‘한국호’의 진로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치 행사다. 민주당의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정치 상황은 서로 다른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특히 정부·여당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인 만큼 야당 의장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재 당권 경쟁은 정세균 전 의장과 추미애 당선인 간의 양강 구도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정 전 의장은 전·현직 의원들과 대면 접촉을 늘리는 등 여의도 중심으로 탄탄한 지지층을 쌓아가며 대세 굳히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오는 5월23일께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인 그는 추당선인에 비해 다소 낮은 인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전국 순회에 나설 계획도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4년의 공백을 딛고 복귀하는 추당선인은 당원들과 직접 만나 외곽으로부터 바람몰이에 나섰다. 일반 유권자의 지지율에서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열세를 보이는 상황을 바닥 지지층 다지기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구상으로 여겨진다.

 

흩어진 김근태계, 총선 패배 후유증 딛고 ‘새 대오’ 모색 중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당내에 형성된 ‘세력’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 전 의장과 추당선인 모두 그동안 계파 및 계보 정치와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어온 정치인들이다. 당 안팎에서는 총선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한 손학규계가 정 전 의장을, 선거 패배 후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정동영계가 추미애 당선인을 각각 지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내 신·구 세력 간 격돌이 예고되는 셈이다. 옛 민주당 세력은 아직 관망하는 분위위기다.                                                                                        ⓒ뉴시스

김근태계도 총선 패배 후유증을 딛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평연은 이달 들어 매주 모임을 갖고 당의 진로와 향후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우원식 의원은 “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고 있다”라고 전했다. 우의원은 “의견을 모아 행동도 같이 하는 것이 좋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당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다가온 전당대회에서 민평연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진 의원은 “민주·개혁 세력이 총선을 통해 괴멸되다시피 했는데 잘 추슬러 새롭게 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문의원은 “전당대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 원외의 주장도 담아낼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한 만큼 지도부 구성을 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내 다른 세력과의 연대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우의원은 “계파를 넘어 당내 개혁 진영이 전체적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 내외를 막론하고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유선호 의원도 “어려울수록 지혜를 모으자, 같은 생각을 가진 그룹과 힘을 합하자는 의견을 꾸준히 나누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활동 재개를 모색 중인 김근태계가 전당대회를 통해 행사할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도 있다.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낙선해 ‘운동권 사랑방’에 머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평연 소속의 한 의원은 “매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여전히 운동권 모임 성격이 강해 변화한 시대를 제대로 못 읽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한 인사는 “원내 진입이 미미한 상황에서 독자적 움직임이 가능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반성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또 다른 정치 활동으로 국민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자료

 

이에 따라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각자도생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민평연 소속 의원들은 각자 이해에 따라 손학규·정동영·이해찬 후보 등을 지원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번 전당대회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총선 후 민평연과 한반도재단을 통합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려는 시도가 무산되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김근태 전 의장의 행보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모임의 구심점이 되어온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부 결속력과 외부 영향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전 의장은 총선 패배 후 지역구에서 낙선 인사를 가진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민평연 모임에도 아직까지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모임 참석은 물론 정치 활동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미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김 전 의장과 면담을 갖고 당 문제를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김 전 의장의 한 측근은 “민평연과 관련해 특별한 말씀이 없다. 시간을 좀더 가지시려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단기적으로 끝날 판이 아니기 때문에 정리할 것을 먼저 정리한 다음 말씀을 하실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통합의 ‘밀알’을 자처했던 김 전 장관이 실질적 대통합을 이끌어내야 할 당 지도부 선출에 어떤 역할을 할지 그의 다음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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